탈무드: 하루 종일 웃음을 잃지 않은 랍비 베루나

옛날 유대인 학자들 가운데, 가르침을 정성껏 실천하는 일을 기뻐하는 랍비 베루나가 있었어요. 베루나에게는 하루 종일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날이 있었지요.

그날 베루나는 기도를 준비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속박에서 벗어난 일을 기억하는 축복을 마치고, 곧바로 서서 드리는 기도로 이어 가려는 참이었어요. 두 부분 사이에 상관없는 말이 끼어들지 않도록 마음을 모았어요.

붉은 새벽빛이 비치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지붕과 성벽
2007년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해돋이 — Chris Yunker의 사진,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축복을 마친 베루나는 그 흐름을 이어 기도했어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긴 일을 바르게 해낸 것이었어요. 기도가 끝난 뒤에도 그 기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녁이 되도록 웃음이 입술에 남았지요.

베루나의 정성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어요. 랍비 엘라였어요. 훗날 울라가 이스라엘 땅으로 갈 때, 엘라는 베루나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말해 주기를 바랐지요.

“그는 가르침을 지키는 일을 정말 기뻐하는 사람이오.”

엘라가 기억한 것은 큰 상을 받거나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정성껏 실천한 일을 기뻐하던 베루나의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베루나가 지킨 순서를 읽다 보면 한 가지가 궁금해져요. 축복이 끝나자마자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를 뜻할까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바르게 기도할 수 있도록 입술을 열어 달라고 청하는 구절도 읽었거든요.

등불 아래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그린 14세기 카우프만 하가다 삽화
14세기 카우프만 하가다의 아침 기도 장면 —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이 문제를 따지던 학자들의 질문은 이랬어요. 그 구절도 따로 읽는 한마디라면, 축복과 기도 사이를 끊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랍비 엘아자르는 먼저 저녁 기도에 관한 말로 볼 수 있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저녁에도 축복과 기도를 이어야 한다는 반론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 앞에 같은 축복이 없는 오후 기도를 가리킨다는 설명으로 옮겨 갔지요.

랍비 아시는 문제를 조금 다른 쪽에서 풀었어요. 어느 시간의 기도인지 바꾸어 생각하기보다, 그 구절이 원래 기도의 일부인지 살핀 거예요.

기도를 시작하며 입술을 열어 달라고 청하는 말은 뜬금없는 잡담이 아니었어요. 기도를 시작하도록 정해진 말이었지요. 끝에 자신의 말과 마음을 받아 달라고 청하는 구절도 기도를 마치는 부분이었어요.

아시는 이렇게 앞뒤를 모두 포함해 하나의 긴 기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저녁에 구원에 관한 축복 뒤로 이어지는, 편히 쉬게 해 달라는 축복도 같은 원리로 이해했지요. 정해진 한 흐름 안에 있는 말과 그 흐름을 끊는 다른 말은 구별해야 했어요.

베루나가 웃던 날, 이 학자들이 모두 곁에 모여 토론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의 실천 이야기 뒤에, 그 실천을 어떻게 이해할지 묻는 가르침들이 이어진 것이었지요.

그 설명을 알고 나면 베루나의 작은 기쁨도 더 또렷해져요. 그는 뜻도 모른 채 서둘러 말을 끝낸 것이 아니었어요. 소중하게 여기는 실천을 정성껏 이루었고, 그 기쁨을 하루 동안 간직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소중히 여기는 일을 정성껏 해낸 기쁨은 남에게 크게 보이는 성과가 아니어도 오래 남을 수 있어요. 엘라는 베루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보고 안부와 칭찬을 전하려 했어요. 우리도 누군가의 조용한 노력을 발견하면, 무엇을 잘해 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