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시링크스와 갈대피리의 첫 노래

아주 오래전, 그리스 아르카디아의 산과 숲에는 맑은 샘과 강이 많았어요. 그곳에는 시링크스라는 물의 님프가 살았지요. 님프는 자연을 돌보는 신비로운 존재예요.

시링크스는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따랐어요. 활을 메고 숲길을 달리는 일을 좋아했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 했지요. 나무 사이로 아침빛이 스며들면 시링크스는 혼자 조용히 길을 나섰어요.

어느 날, 시링크스가 산에서 내려오다가 판과 마주쳤어요. 판은 목동과 들판을 돌보는 신이었어요. 머리에는 작은 뿔이 있고, 다리는 염소처럼 생겼지요. 판은 숲 저편에서 시링크스를 보자 곧장 다가왔어요.

울창한 나무와 강이 있는 풍경 속에서 판과 시링크스와 강의 님프들이 움직이는 흑백 판화
강가에서 시링크스를 뒤쫓는 판 — 출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잠깐만 멈춰 보세요.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하지만 시링크스는 고개를 저었어요. “저는 혼자 가고 싶어요.” 시링크스의 대답은 짧고 분명했어요. 그런데 판은 그 말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어요.

시링크스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어요. 마른 솔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고, 나뭇가지가 팔을 스쳤어요. 판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지요. 시링크스는 익숙한 숲길을 골라 달렸지만, 앞에는 넓은 강이 가로놓여 있었어요.

그 강은 모래가 반짝이는 라돈강이었어요. 물살이 깊고 빨라서 그대로 건널 수 없었지요. 시링크스는 강가에 멈춰 숨을 몰아쉬었어요. 뒤에서는 판이 다가오고, 앞에서는 강물이 길을 막았어요.

시링크스는 강에 사는 님프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끌려가지 않게 도와줘요. 내 뜻을 지킬 수 있게 해 줘요.”

그 순간 시링크스의 발끝이 가느다란 뿌리로 바뀌었어요. 팔은 푸른 줄기가 되었고, 머리카락은 길고 부드러운 잎으로 변했지요. 시링크스가 서 있던 자리에는 키가 서로 다른 갈대들이 강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어요.

뒤늦게 도착한 판은 시링크스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의 손에 닿은 것은 차갑고 가느다란 갈대뿐이었지요. 시링크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판이 긴 숨을 내쉬자 바람도 함께 갈대 사이를 지나갔어요. 그러자 갈대들이 낮고 맑은 소리를 냈어요. 어떤 줄기는 낮게 울었고, 어떤 줄기는 새처럼 높게 떨렸어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이어져 작은 노래가 되었지요.

판은 한동안 그 소리를 들었어요. 그는 길이가 다른 갈대 몇 대를 골라 나란히 놓고 밀랍으로 묶었어요. 한쪽에서 입김을 불자 높고 낮은 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왔어요. 판은 그 피리에 시링크스의 이름을 붙였어요.

그 뒤로 목동들은 들판에서 그 악기를 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시링크스 또는 판의 피리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바람이 먼저 만든 노래는 누구의 손에도 붙잡히지 않았어요. 갈대숲을 지날 때마다 자유롭게 흔들리며, 시링크스가 끝까지 지킨 마음을 오래 들려주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