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그리스 보이오티아의 숲에 나르키소스라는 소년이 살았어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물의 요정 리리오페의 아들이었지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리리오페는 앞날을 보는 테이레시아스에게 아이가 오래 살 수 있는지 물었어요.
테이레시아스는 뜻을 바로 알기 힘든 대답을 했어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오래 살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나르키소스는 열여섯 살이 되었어요. 그는 숲과 들을 다니며 사냥하기를 좋아했어요. 많은 사람이 친구가 되고 싶어 다가왔지만, 나르키소스는 마음을 닫은 채 차갑게 돌아서곤 했어요.
그 숲에는 에코라는 요정도 살았어요. 에코는 본래 이야기를 무척 잘했어요.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끝없이 이어 갈 수 있었지요. 어느 날 에코는 긴 이야기로 헤라 여신의 길을 막아 다른 요정들이 자리를 피할 시간을 벌어 주었어요.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헤라는 화가 났어요.
“네가 먼저 말을 꺼낼 수 없게 하겠다. 남이 한 말의 끝부분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에코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스스로 시작할 수 없었어요. 누군가 말해야만 마지막 몇 마디를 되돌려 줄 수 있었지요.

어느 날, 에코는 사냥감을 쫓아 숲 깊이 들어온 나르키소스를 보았어요. 함께 걷고 싶었지만 먼저 인사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그의 말을 기다렸지요.
일행과 떨어진 나르키소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어요.
“여기 누구 있나요?”
“있나요?”
에코의 목소리가 숲을 돌아왔어요.
“이리 오세요!”
“오세요!”
에코는 반가워하며 나무 뒤에서 뛰어나왔어요. 나르키소스에게 두 팔을 내밀었지요.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놀라 뒷걸음질 쳤어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에코는 마지막 말만 되풀이할 수 있었어요.
“오지 마세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 에코는 깊이 상처받았어요. 그는 부끄러워 사람의 눈을 피해 동굴과 바위틈으로 숨었어요. 먹지도 쉬지도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르자 몸은 점점 야위었어요. 마침내 모습은 사라지고, 바위와 숲 사이에 목소리만 남았지요. 사람들이 산에서 외치면 마지막 말이 돌아오는 까닭을 옛사람들은 에코의 이야기로 설명했어요.
나르키소스에게 거절당한 다른 이들도 슬퍼했어요. 그중 한 사람이 공정한 벌을 내리는 네메시스 여신에게 빌었어요.
“나르키소스도 손에 닿지 않는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세요.”
네메시스는 그 소원을 들었어요.
어느 더운 날, 나르키소스는 사냥을 마치고 목이 말랐어요. 그는 숲속에서 맑은 샘을 발견했어요. 목동도 가축도 새도 찾아오지 않은 고요한 샘이었어요. 나무 그늘 아래의 물은 거울처럼 잔잔했지요.

나르키소스가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였어요. 그 순간 물속에서 아름다운 얼굴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았어요. 그는 그것이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손을 뻗으면 물결이 일어나 얼굴은 흩어졌고, 기다리면 다시 나타났어요.
“왜 나를 피하나요?”
물속의 입술도 똑같이 움직였지만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어요. 나르키소스는 샘가를 떠나지 못했어요. 얼굴을 붙잡으려 할수록 손에는 차가운 물만 닿았지요.
오래 바라보던 나르키소스는 마침내 깨달았어요.
“저 모습은 바로 나구나. 내가 다가가면 함께 다가오고, 내가 웃으면 함께 웃고 있어.”
테이레시아스의 오래된 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나르키소스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알아보았지만, 물속의 모습과 떨어질 수는 없었어요. 아무리 불러도 만날 수 없는 대상을 바라보는 슬픔이 이제 그에게 돌아온 것이지요.
나르키소스는 힘이 빠져 샘가의 풀 위에 누웠어요. 멀리 바위틈에 남아 있던 에코는 그의 탄식을 들었어요. 나르키소스가 “안녕”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자 에코의 목소리도 작게 대답했어요.
“안녕…….”
숲의 요정들이 나르키소스를 위해 장례를 준비하러 왔어요. 그러나 샘가에는 그의 몸이 없었어요. 그 자리에는 가운데가 노랗고 둘레가 하얀 꽃잎으로 감싸인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지요. 사람들은 그 꽃을 나르키소스의 이름으로 불렀어요.
그 뒤에도 숲속 샘은 하늘을 비추었어요. 물가에는 나르키소스 꽃이 피었고,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보이지 않는 에코의 목소리가 마지막 말을 되돌려 주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