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과 깨어난 상아 조각상

아주 오래전,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살았어요. 그는 돌과 나무, 상아를 깎아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만드는 일을 좋아했지요.

피그말리온의 작업실은 늘 조용했어요.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에 길게 누우면, 망치가 끌을 두드리는 소리만 또각또각 울렸어요.

어느 날 그는 눈처럼 흰 상아 한 덩이를 작업대에 올렸어요. 상아는 코끼리의 엄니로 만든 단단한 재료였어요. 피그말리온은 서두르지 않고 먼저 그 결을 오래 살폈지요.

“안에 숨어 있는 모습을 찾아내 보자.”

그는 굵은 부분을 조금씩 덜어 내고, 다시 아주 작은 끌로 눈과 입술을 다듬었어요. 손가락을 만들 때에는 힘을 줄였다가 멈추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어요. 한 번 잘못 깎으면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며칠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났어요. 마침내 상아는 금방이라도 숨을 쉴 듯한 사람의 모습이 되었어요.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바라보다가 손에서 끌을 내려놓았어요.

그는 조각상에게 조약돌과 조개껍데기, 향기로운 꽃을 가져다주었어요.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우고,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보기도 했지요. 그러나 아무리 말을 걸어도 작업실에는 자기 목소리만 돌아왔어요.

피그말리온은 그제야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조각가라도 생명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름다운 모양과 따뜻한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었지요.

얼마 뒤, 키프로스 사람들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축제를 열었어요. 거리에는 향긋한 향 연기가 피어올랐고, 사람들은 꽃을 들고 신전으로 향했어요.

피그말리온도 제물을 바친 뒤 제단 앞에 섰어요. 그는 소원을 말하려다가 몇 번이나 입을 다물었어요. 너무 큰 소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침내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신들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다면, 제가 만든 상아 조각상 같은 사람을 아내로 맞게 해 주세요.”

피그말리온은 조각상 그 자체를 달라고 말할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들었어요.

그 순간 제단의 불꽃이 세 번 높이 솟았어요. 피그말리온은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지요.

축제가 끝나자 그는 서둘러 작업실로 돌아왔어요. 상아 조각상은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어요. 피그말리온은 조금 실망하면서도 그 손등에 손가락을 살며시 대 보았어요.

그런데 차갑고 단단해야 할 상아가 따뜻했어요.

피그말리온은 자기 손이 뜨거워 그렇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조각상의 손을 다시 잡았어요. 이번에는 손가락 아래에서 아주 작은 맥박이 뛰었어요.

상아빛 뺨에 천천히 붉은 기운이 번졌어요. 굳어 있던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였고, 감겨 있던 눈이 살며시 열렸어요.

앉아 있는 피그말리온이 깨어난 조각상의 손을 잡는 갈색 잉크 소묘
조각상이 생명을 얻은 뒤 손을 맞잡는 장면 — 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피그말리온은 너무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어요. 조각상은 이제 작품이 아니었어요. 숨을 쉬고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움직이는 한 사람이 되었지요.

막 깨어난 사람은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햇빛이 손바닥에 닿자 손을 펴 보았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자 환하게 웃었어요.

피그말리온은 작업실의 문을 활짝 열었어요. 둘은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어요. 그는 바다의 짠 냄새와 올리브나무의 은빛 잎, 시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씩 알려 주었어요.

그 뒤 피그말리온과 살아난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 갔어요. 피그말리온은 완벽한 모양을 만드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듣는 일이 더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마음을 정한 날, 아프로디테도 그들의 혼인을 축복하러 왔다고 해요. 제단에서 세 번 솟았던 불꽃의 뜻이 그제야 분명해졌지요.

시간이 흘러 두 사람에게는 파포스라는 딸이 태어났어요. 사람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키프로스의 한 고장에 붙여 오래 기억했어요.

피그말리온의 작업실에는 여전히 망치와 끌이 놓여 있었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고요하지만은 않았어요. 열린 창으로 웃음과 발소리가 들어왔으니까요.

차가운 상아가 따뜻해진 그날, 피그말리온은 가장 놀라운 변화가 겉모습에만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알았어요. 혼자 완벽함을 바라보던 그의 마음에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자리가 생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