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모른다고 말한 두 현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새벽 예배를 드리던 시절, 담당자는 그들에게 먼저 ‘한 가지 축복’을 하라고 말했다고 전해졌어요. 세월이 흘러 그 예배가 글로 남았지만, 그 한 가지 축복이 무엇이었는지는 또렷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랍비 압바와 랍비 요세 바르 압바가 이름이 전하지 않는 한 마을에 도착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찾아온 두 현자에게 오래 품어 온 질문을 꺼냈어요.

“제사장들이 아침에 올렸다는 그 한 가지 축복은 무엇인가요?”

두 현자는 서로 바라보았어요.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해서 아무 답이나 고를 수는 없었어요. 두 사람은 지금 그 답을 알지 못한다고 솔직히 말했어요.

그들은 질문을 그대로 품고 라브 마테나를 찾아갔어요. 마테나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라브 마테나도 아는 척하지 않았어요. 그 역시 손에 쥔 답이 없다고 말했어요.

질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세 사람은 더 오래된 가르침을 아는 라브 유다에게 물었어요. 라브 유다는 스승 슈무엘에게서 전해 들은 말을 알려 주었어요. 그 축복은 ‘풍성한 사랑’이라는 뜻의 기도였다는 답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던 답을 찾은 듯했어요. 하지만 탈무드의 토론은 한 사람의 말만 적고 끝나지 않았어요. 또 다르게 전해 온 말에서는 그 축복이 ‘빛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뜻의 기도였다고 보았어요.

나중에 라브 이츠하크 바르 요세프가 중요한 차이를 짚었어요. 두 번째 답은 스승에게서 직접 들은 문장이 아니었어요. 다른 설명을 바탕으로 끌어낸 결론이었어요. 이어진 토론에서도 그 추론만으로 어느 축복이었는지를 확정할 수 있는지 다시 따졌어요.

처음 질문을 받은 두 현자는 답을 몰랐어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갈 수 있었어요. 라브 마테나도 모른다고 말했기 때문에, 질문은 더 멀리 가서 전해 온 한 답을 만났어요. 그리고 다른 현자들은 들은 말과 생각해 낸 결론을 나누어 살폈어요.

마을 사람들의 질문에는 하나로 끝나는 쉬운 답이 붙지 않았어요. 대신 더 값진 배움이 남았어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일, 답을 찾을 때까지 묻는 일, 그리고 직접 전해진 말과 추론을 구별하는 일이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랍비 압바와 랍비 요세 바르 압바는 아는 척하지 않았기에 더 믿을 만한 답을 찾아갈 수 있었어요. 또 같은 질문에 다르게 전해 온 말이 있을 때는 어느 말이 직접 전해졌고 어느 말이 생각을 거쳐 나온 것인지 살펴야 해요. 숙제나 약속을 확인할 때도 확실하지 않은 말을 사실처럼 전하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 다시 묻는 태도가 우리를 더 정직하게 만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