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다윗 왕의 시대가 지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어요. 유대인 학자들은 옛 성경을 읽으며 그 뜻을 나누었어요. 랍비 아바후도 사람들의 물음에 귀를 기울이는 학자였지요.
어느 날 한 사람이 아바후에게 시편에 관한 질문을 했어요.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찬양, 슬픔을 시로 담은 책이에요. 그 사람은 책에 실린 두 시의 순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시편 3편에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피해 달아날 때와 관련된 시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훨씬 뒤의 57편에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숨었을 때와 관련된 시가 있었지요.
사울은 다윗보다 먼저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이었어요. 다윗은 젊었을 때 사울에게 쫓겼고, 훗날 자신이 왕이 된 뒤에는 아들 압살롬에게 쫓겼어요. 사울을 피한 일이 먼저였던 거예요.

“먼저 일어난 일을 담은 시가 왜 책 뒤쪽에 있습니까?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놓아야 하지 않나요?”
아바후는 날짜 말고도 글을 나란히 놓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어요. 앞의 글을 읽으며 생긴 물음에 뒤의 글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까닭을 보려면 압살롬의 시 바로 앞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번에 아바후가 가리킨 것은 사울과 관련된 57편이 아니었어요. 압살롬과 관련된 3편, 그리고 바로 앞의 2편이었어요. 처음에는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비교했다면, 이제는 서로 이웃한 두 시의 뜻을 비교하려는 것이었지요.
2편에는 여러 민족과 왕들이 하나님에게 맞서려는 모습이 나와요. 아바후는 그 장면을 읽고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고 보았어요. “하나님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맞선다고요? 종이 주인을 거스르듯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질문 곁에 놓인 것이 압살롬의 이야기였어요. 압살롬에게 다윗은 나라의 왕이면서 자신의 아버지였어요. 그런데도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맞서 일어났지요.
아바후의 설명은 이랬어요. 아들이 아버지를 거스른 일도 있었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다스리는 분을 거스른다는 내용 역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더 큰 반역을 이해할 실마리가 된 거예요.
이렇게 읽으면 3편이 2편 다음에 있는 까닭이 보여요. 먼저 나온 시가 낯설게 느껴질 때, 바로 다음의 다윗과 압살롬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뜻을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처음 물음은 “왜 시간 순서가 아닌가요?”였어요. 아바후의 답은 “시간 순서가 아니라, 서로의 뜻을 이해하도록 놓인 순서일 수 있습니다”였지요.
사울을 피해 숨은 일이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다만 시편을 읽는 방법이 하나 더 생겼어요.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살피는 것과 함께, 앞뒤에 어떤 글이 놓여 있는지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책에 적힌 순서가 사건의 시간 순서와 다르다고 해서 곧바로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아바후는 앞뒤 글을 함께 읽으며 그 배치의 뜻을 설명했어요. 다만 비교하는 대상이 바뀔 때는 무엇을 왜 비교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해요. 다른 사람의 말도 중간 한마디만 떼어 듣기보다, 앞에서 무엇을 묻고 뒤에서 어떻게 답하는지 함께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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