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유대인들이 성경의 뜻을 묻고 배우던 시절에 베루리아라는 여인이 있었어요. 베루리아는 한 구절을 읽을 때에도 앞뒤의 말을 함께 살피며 생각했어요.
어느 날 한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들고 와 물었어요. 그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에게 기뻐하며 노래하라고 하는 대목이었어요.
“자녀가 없는데 왜 기뻐하라고 하나요?”
그 사람은 앞부분만 읽고 멈추었어요. 자녀가 없는 형편 자체를 기뻐하라는 말로 이해한 것이었지요. 베루리아는 그가 읽은 문장의 뒤를 가리켰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이어지는 말도 보세요.”
뒤에는 버려지고 황폐해 보이던 이에게 많은 자녀가 생기리라는 말이 이어졌어요. 앞부분의 외로운 모습과 뒷부분의 풍성한 모습이 서로 이어져 있었어요.
베루리아는 먼저 그 여인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설명했어요. 이 대목의 여인은 한 집에 사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나타내는 비유였어요. 공동체는 함께 살아가며 같은 믿음과 역사를 나누는 사람들을 뜻해요.

사람들이 흩어지고 삶의 터전이 황폐해졌을 때, 그 공동체는 자녀 없이 홀로 남은 여인처럼 그려졌어요. 뒤에 많은 자녀가 생긴다는 말은 그렇게 외롭던 공동체에 다시 미래가 열리리라는 뜻으로 이어졌지요.
베루리아는 또 자녀를 말하는 대목에서, 그릇된 길로 향할 자손을 낳지 않았다는 뜻도 읽어 냈어요. 자녀가 있고 없다는 겉모습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어떤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핀 풀이였어요.
그러니 앞의 말을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기뻐하라”로만 읽을 수는 없었어요. 베루리아가 풀이한 것은 어려움 속에 있는 공동체와 그 뒤에 이어지는 약속이었어요.
처음 질문한 사람은 문장 하나가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베루리아는 그 문장을 지우거나 말을 바꾸지 않았어요. 끝까지 읽고, 비유가 가리키는 대상을 함께 보도록 했어요.
같은 구절이었지만 멈추어 읽은 자리와 끝까지 읽은 자리는 달랐어요. 앞부분에 홀로 서 있던 여인의 모습 뒤로, 다시 살아갈 공동체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말의 뜻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에는 끝까지 읽고 누구를 가리키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베루리아는 문장의 뒷부분과 비유의 대상을 함께 짚었어요. 이 비유로 오늘날 자녀가 없는 사람이나 여러 가족의 모습을 평가해서는 안 돼요. 사람의 삶에 관한 말일수록 일부만 떼어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