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세상의 동쪽 끝에는 매일 아침을 여는 여신 에오스가 살았어요. 에오스가 장밋빛 빛을 펼치면 밤이 물러가고, 사람들은 새 하루를 시작했지요.
어느 날 에오스는 트로이 왕가의 젊은이 티토노스를 만났어요. 티토노스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었지만, 에오스는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곧은 마음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둘은 바다를 두른 세상의 끝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어요. 티토노스는 에오스가 새벽빛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에오스는 일을 마치면 그에게 돌아왔어요.
하지만 에오스의 마음 한쪽에는 걱정이 자라고 있었어요. 여신인 자신은 아주 오래 살지만, 사람인 티토노스에게는 삶의 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르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해.”
그 생각을 견디기 어려웠던 에오스는 올림포스산의 제우스를 찾아갔어요. 제우스는 신들과 사람들의 운명을 다스리는 가장 높은 신이었어요.
에오스는 제우스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소원을 말했어요.
“티토노스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해 주세요.”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순간 에오스의 소원은 이루어졌지요.
에오스는 기쁨에 차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둘을 죽음이 갈라놓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너무 서두른 나머지 한 가지를 빌지 못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어요.
에오스는 티토노스가 젊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아무 문제도 보이지 않았어요. 티토노스는 에오스와 함께 강가를 걸었고, 먼 바다 위로 번지는 새벽빛을 바라보았어요.
계절이 여러 번 바뀌자 티토노스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은빛이 나타났어요. 에오스는 그 머리카락을 보고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작은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세월은 멈추지 않았어요. 티토노스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졌고, 힘차던 걸음은 점점 느려졌어요. 아침마다 쉽게 열리던 문도 어느 날부터는 두 손으로 밀어야 했지요.
“나는 죽지 않지만, 계속 늙어 가는 건가요?”
티토노스의 물음에 에오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그제야 자신이 빌었던 말과 빌지 않았던 말을 또렷이 떠올렸어요.

에오스는 다시 제우스를 찾아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미 받아들여진 소원을 되돌릴 수는 없었어요. 죽지 않는 삶과 늙지 않는 삶은 서로 다른 것이었지요.
에오스는 티토노스를 자기 집에 머물게 했어요. 좋은 음식을 챙기고, 신들이 먹는 암브로시아도 가져다주었어요. 몸을 따뜻하게 덮을 옷도 정성껏 골랐어요.
그래도 세월은 티토노스의 힘을 조금씩 가져갔어요. 그는 더는 강가를 걸을 수 없었고,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워졌어요.
에오스가 새벽을 열러 떠날 때마다 티토노스는 작은 목소리로 잘 다녀오라고 말했어요. 얼마 뒤에는 그 인사도 알아듣기 힘들 만큼 희미해졌어요.
에오스는 티토노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용한 방을 마련했어요. 눈부신 빛이 그를 괴롭히지 않게 반짝이는 문도 닫아 주었지요.
문 앞에 선 에오스는 오래도록 손잡이를 놓지 못했어요. 영원히 함께 있고 싶었던 소원이 오히려 사랑하는 이를 끝없는 늙음 속에 머물게 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팠어요.
그러나 세상은 새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에오스는 눈물을 닦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어요. 여신이 지나간 자리마다 어둠 위로 붉고 금빛인 길이 열렸지요.
그 뒤에도 에오스는 날마다 새벽을 가져왔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빛을 서둘러 펼치지는 않았어요. 소원을 말하기 전에는 그 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천천히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사람들은 아침 하늘이 유난히 오래 붉게 머무는 날이면 에오스가 티토노스의 방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새벽빛에는 영원한 삶만으로는 붙잡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시간이 조용히 남아 있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