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새 이름을 얻은 아브라함과 사라

아주 오래전의 인물들이 기록된 옛 성경을 두고, 훗날의 유대 현자들이 이름의 뜻을 살피던 때였어요. 그들은 한 사람이 두 이름으로 불리는 대목 앞에 멈췄어요.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그의 아내 사래는 사라로 불리게 되었어요.

이름은 몇 글자만 달라졌지만, 현자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변화였어요.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다는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겼을까요?”

현자들은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처음에는 아람과 이어진 아버지라는 좁은 범위로 읽었어요.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에는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더 넓은 뜻이 담겼다고 풀었어요. 이름이 넓어지면서 그가 맡은 자리와 책임도 더 넓어졌다고 본 것이지요.

사래의 이름도 함께 살폈어요. 사래는 ‘나의 공주’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한 이름으로 읽혔어요. 사라는 한 무리만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공주라는 뜻으로 풀렸어요. 두 사람의 새 이름에는 자기 울타리만 바라보지 말라는 방향이 함께 담겨 있었어요.

바르 카파라는 아브라함을 다시 아브람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랍비 엘리에제르도 옛 이름으로 되돌려 부르지 말라는 말씀을 중요하게 보았어요. 새 이름을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지켜야 할 이름으로 본 것이에요.

그러자 물음이 이어졌어요.

“그렇다면 사라를 사래라고 부르는 일도 똑같이 보아야 할까요?”

현자들은 사라의 경우에 쓰인 말의 상대를 다시 살폈어요. 그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를 사래가 아니라 사라라고 부르라고 한 말이었어요.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은 같아 보여도, 그 말이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같지 않았어요.

또 다른 질문도 나왔어요. 야곱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왜 옛 이름인 야곱을 계속 쓸 수 있을까요?

답은 이야기의 뒷부분에 있었어요. 옛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야곱”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래서 현자들은 야곱이라는 이름이 지워진 것은 아니라고 보았어요. 이스라엘이 앞에 놓이는 이름이 되었지만, 야곱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 주는 이름으로 남았어요.

마지막으로 한 구절이 더 질문을 던졌어요. 훗날의 기록에 하나님이 “아브람을 선택하셨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현자들은 그 구절이 아브라함의 처음 시절을 돌아보며 지나온 일을 말한 것이라고 답했어요. 예전 이름을 다시 현재 이름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변화가 시작되기 전을 가리킨 것이었어요.

현자들은 이름이 바뀌었다는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경우를 하나의 규칙으로 묶지 않았어요. 아브라함과 사라, 야곱의 이름이 나온 앞뒤 문장을 각각 살핀 뒤에야 서로 다른 답을 내렸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이름 하나에도 지나온 삶과 새로 맡은 책임이 함께 담길 수 있어요. 현자들은 먼저 결론을 정해 놓지 않고, 비슷해 보이는 이름의 변화를 하나씩 다시 읽었어요. 친구의 이름이나 별명을 부를 때도 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름을 존중해 보세요. 겉모습이 비슷해도 사정이 다를 수 있다는 질문은 생각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