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유대인 학자들은 함께 배우는 동료가 아프면 찾아가 안부를 물었어요. 랍비 요하난에게도 그런 방문의 이야기가 전해져요. 세 번의 방문에서는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 조금씩 달라졌지요.
먼저 병든 이는 랍비 히야 바 아바였어요. 요하난이 그를 찾아가 물었어요. 지금 겪는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싶은지 묻는 말이었어요.
당시에는 시련을 견디는 일에 보상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히야 바 아바는 분명히 답했어요.
“괴로움도, 그 보상도 원하지 않습니다.”
요하난은 생각을 바꾸라고 설득하지 않았어요. 손을 내밀어 달라고 한 뒤, 친구가 내민 손을 잡아 일으켰어요.

다른 때에는 요하난 자신이 병들었어요. 이번에는 랍비 하나나가 찾아왔지요. 같은 질문을 받은 요하난도 괴로움과 그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어요.
“손을 주십시오.”
이번에는 요하난이 손을 내밀었어요. 남을 일으켜 주었던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요. 혼자서는 나올 수 없는 곳에 갇힌 사람처럼, 요하난에게도 밖에서 다가오는 손이 필요했어요.
또 한 번의 방문에서 요하난은 병든 엘아자르를 찾아갔어요. 방은 어두웠어요. 이야기에서는 요하난이 팔을 드러내자 빛이 퍼졌다고 전해요. 그 빛 속에서 엘아자르의 눈물이 보였어요.
요하난은 왜 우는지 물었어요. 공부를 충분히 못 한 것이 속상한지, 살림이 어려운지, 자녀를 잃은 슬픔 때문인지 하나씩 헤아려 보았어요. 요하난 자신도 자녀를 잃은 아픔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엘아자르가 슬퍼하는 까닭은 달랐어요. 눈앞의 요하난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고 지금의 모습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제야 요하난은 자기가 짐작하던 이유들을 내려놓았어요.
“그 일이라면 슬퍼할 만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울었어요. 괜찮다고 서둘러 말하기보다,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삶의 슬픔을 함께 느꼈어요.
조금 뒤 요하난은 지금의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싶은지 다시 물었어요. 엘아자르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지요. 요하난은 그 손을 잡아 일으켰어요.
세 방문에서 내미는 손은 서로 바뀌었어요. 그러나 먼저 들어야 할 말은 같았어요. 아픈 사람이 자기 괴로움을 어떻게 느끼는지였지요. 요하난에게도 누군가를 도울 때가 있었고, 자기 손을 내밀 때가 있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힘든 사람을 위로할 때는 좋은 뜻부터 찾아 주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세요. 요하난은 엘아자르가 정말 슬퍼하는 이유를 듣고 함께 울었어요. 남을 도왔던 사람도 도움이 필요할 수 있어요. 이 옛 병문안 이야기의 손잡기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지,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뜻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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