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현자들은 쉐마를 읽을 때 마음을 어디까지 모아야 하는지 오래 이야기했어요. 쉐마는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하는 믿음의 고백이에요. 그 첫 문장 끝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에하드’가 나와요. 에하드는 우리말로 ‘하나’라는 뜻이에요.
먼저 현자들은 쉐마의 말을 거꾸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글자가 적힌 차례를 따라 읽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그러자 새로운 물음이 생겼어요.
“읽는 내내 같은 만큼 마음을 모아야 할까요?”
현자들은 읽는 말에 뜻과 주의를 모으는 일을 중요하게 보았어요. 이런 집중을 ‘카바나’라고 불러요. 하지만 어느 부분까지 특별히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하나뿐이지 않았어요.
랍비 엘리에제르는 쉐마의 첫 부분 가운데 “이 말씀들”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풀이했어요. 랍비 아키바는 첫 부분 전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았고, 랍비 요하난은 아키바의 견해를 따랐어요.
다른 가르침에서는 말로 또렷이 읽는 일과 마음을 모으는 일을 나누어 살폈어요. 어떤 현자는 첫 부분에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고, 둘째 부분에는 소리 내어 읽는 일만 필요하다고 보았어요. 다른 현자는 첫 부분에서는 마음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고, 둘째 부분에서는 소리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어요. 현자들은 같은 쉐마 안에서도 말과 마음이 맡는 몫을 세심하게 나누어 보았지요.
랍비 메이르는 첫 문장, 곧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며, 주는 하나이시다”라는 말까지 특별한 집중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라바는 이 견해를 따랐어요.
그러자 심마쿠스라는 현자는 마지막 말인 ‘에하드’를 길게 읽는 사람에게 긴 날과 해가 더해진다고 말했어요. 다른 현자들은 소리를 길게 내는 방법도 살폈어요. 마지막 글자에 마음을 두되, 앞의 소리를 흐리지 말라고 했지요. 그들에게 발음은 뜻을 드러내는 그릇이었어요.
어느 날 예레미야가 랍비 히야 바 아바 앞에서 쉐마를 읽고 있었어요. 예레미야는 ‘에하드’를 아주 오래 끌었어요. 한 분이라는 뜻을 놓치지 않으려고 길게, 또 길게 소리를 이어 갔지요.
그 모습을 본 히야 바 아바가 말했어요.
“하나님이 위와 아래, 그리고 사방을 다스리는 한 분이라는 뜻을 세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더 길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잘못된 말을 읽은 것은 아니었어요. 마음을 모으려는 뜻도 좋았지요. 그러나 히야 바 아바는 집중의 목적을 다시 알려 주었어요. 소리를 오래 내는 일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하나’라는 말이 가리키는 뜻을 마음에 세우는 것이 먼저였어요.
짧은 한마디를 오래 붙잡는다고 해서 마음이 언제나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반대로 빨리 읽는다고 해서 뜻을 놓쳤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요. 현자들의 여러 답은 겉으로 보이는 길이보다, 읽는 사람이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살피게 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중요한 말을 배울 때는 천천히 멈추어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오래 하는 모습만 남으면 처음의 뜻을 잊을 수도 있어요. 공부하거나 약속을 되새길 때 “나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고 먼저 물어보세요. 뜻이 마음에 분명히 자리 잡았다면, 더 길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