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를 읽을 때 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쉐마는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하는 믿음의 고백이에요. 앞선 이야기에서 현자들은 그 첫 문장에 뜻과 주의를 모으는 일을 중요하게 보았어요.
이번에는 몸가짐을 두고 의견이 갈렸어요. 랍비 유다는 “마음에 두라”는 말까지는 서서 읽어야 한다고 전했어요. 랍비 요하난은 첫 부분 전체를 서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지요. 두 사람은 집중이 몸의 자세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무렵 큰 스승 랍비 유다 하나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를 줄여서 ‘랍비’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수업이 이어지는 동안 쉐마를 읽을 때가 되었어요.
랍이라는 제자가 랍비 히야에게 물었어요.
“선생님이 쉐마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랍비 히야가 대답했어요.
“그분이 손으로 눈을 가리는 순간을 보았지요? 바로 그때 쉐마의 첫 문장을 읽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랍비 유다 하나시는 긴 수업을 크게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나 손으로 눈을 가린 짧은 순간만큼은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쉐마의 첫 문장에 마음을 모았어요. 겉으로는 아주 짧아서 놓치기 쉬운 행동이었지만, 히야는 그 안에 중요한 고백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어요.
그 뒤에도 물음은 남았어요. 랍비 유다 하나시가 나중에 쉐마의 나머지 부분까지 읽었을까요?
바르 카파라는 읽지 않았다고 보았어요. 그날 랍비가 이집트 탈출을 말하는 수업을 고른 것은, 쉐마의 나머지 부분을 대신해 그 일을 기억하려는 뜻이었다고 풀이했지요. 하지만 랍비의 아들 시므온은 끝까지 읽었다고 보았어요. 이집트 탈출을 다룬 수업은 단지 알맞은 때에 그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골랐다는 설명이었어요. 탈무드는 두 견해를 억지로 하나로 만들지 않았어요.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첫 문장에 마음을 모으는 일을 강조했어요. 랍비 엘라는 쉐마의 첫 문장을 읽은 뒤 잠에 빠져도 그때의 의무는 다했다고 전했어요. 랍비 나흐만은 시종 다루에게 첫 문장을 읽을 때만은 자신을 깨워 달라고 부탁했어요. 랍비 요셉은 아버지가 첫 문장을 읽을 때에는 잠들지 않으려고 힘썼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이 말들이 쉐마의 나머지 부분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 대목의 현자들은 가장 중요한 한순간에 마음이 온전히 깨어 있는지를 살폈어요. 오래 하는 모습보다, 짧더라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집중하는 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중요한 일은 늘 길어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수업을 듣거나 사과를 하거나 약속을 할 때, 단 한 문장이라도 다른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온 마음으로 말해 보세요. 짧은 순간도 마음이 깨어 있다면 깊은 뜻을 품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