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에게해의 케오스섬에는 산바람이 부는 넓은 숲이 있었어요. 그 숲에는 키파리소스라는 젊은 사냥꾼이 살았어요. 키파리소스는 활을 잘 다루었지만, 숲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사냥의 자랑거리가 아니었어요.
들판을 지키는 요정들에게 바쳐진 커다란 사슴 한 마리가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어요. 사슴의 뿔은 나뭇가지처럼 넓게 뻗었고,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반짝였어요. 목에는 보석 장식이 걸려 있었고, 이마에는 작은 은장식이 달려 있었지요.
그 사슴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낯선 이가 손을 내밀어도 조용히 목을 내어 주었어요. 하지만 사슴이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언제나 키파리소스였어요.
“오늘은 어느 풀밭으로 갈까?”
키파리소스가 물으면 사슴은 귀를 쫑긋 세웠어요. 둘은 맑은 샘이 흐르는 곳까지 나란히 걸었어요. 키파리소스는 풀꽃으로 작은 화환을 만들어 사슴의 뿔에 걸어 주기도 했어요.
때로는 사슴의 등에 살며시 올라타 숲길을 돌았어요. 사슴은 발굽으로 마른 잎을 바스락거리며 천천히 걸었지요. 키파리소스에게 그 시간은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순간보다 더 소중했어요.
여름이 깊어지자 한낮의 햇볕이 뜨거워졌어요. 새들도 나무 그늘에 숨었고, 바위는 손을 대기 어려울 만큼 달아올랐어요. 사슴은 오래 걷지 않고 큰 나무 아래에 몸을 눕혔어요.
키파리소스는 그때 숲의 다른 쪽에 있었어요. 그는 나뭇잎 사이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았어요. 무성한 가지 때문에 그늘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지요.
키파리소스는 그곳에 야생 짐승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잠깐 멈춰 귀를 기울였지만, 더 자세히 확인하지 않은 채 창을 던지고 말았어요.
창이 나무 사이를 가르며 날아갔어요. 이어서 들려온 소리는 사나운 짐승의 울음이 아니었어요. 키파리소스가 너무나 잘 아는 사슴의 낮은 신음이었어요.
키파리소스는 창을 던진 자리로 달려갔어요. 그늘 아래에는 늘 함께 걷던 사슴이 쓰러져 있었어요. 키파리소스는 무릎을 꿇고 사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안았어요.
“내가 너를 못 알아보다니.”
사슴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어요. 숲은 조금 전과 같은 여름 숲이었지만, 키파리소스에게는 모든 소리가 멎은 듯했어요. 그는 자기 손으로 가장 아끼던 벗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며칠이 지나도 키파리소스는 숲을 떠나지 않았어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어요. 사슴에게 꽃을 걸어 주던 손을 바라볼 때마다 그날의 성급한 선택이 떠올랐어요.
그를 아끼던 아폴론이 숲으로 찾아왔어요. 아폴론은 음악과 활을 다루는 신이었어요. 그는 키파리소스 곁에 앉아 슬픔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았어요.
“네가 그 사슴을 해치려고 한 것은 아니야.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네가 살아가며 그 벗을 기억할 수는 있어.”
아폴론은 오래도록 타일렀어요. 그러나 키파리소스의 마음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듯했어요. 그는 살아갈 힘도 남지 않았다고 울었어요. 아폴론은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곁을 지켰지만, 키파리소스는 한 가지 소원만 되풀이했어요.

“이 슬픔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다른 이들이 슬퍼할 때에도 그 곁에 오래 머물 수 있게 해 주세요.”
키파리소스의 눈물이 마르지 않자 몸에 이상한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발은 땅에 깊이 붙었고, 다리는 한 줄기 곧은 줄기가 되었어요. 팔에서는 가느다란 가지가 돋았어요.
부드럽던 머리카락은 짙은 초록 잎으로 바뀌었어요. 가지들은 옆으로 넓게 퍼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모였어요. 잠시 뒤 키파리소스가 서 있던 자리에는 키가 크고 가느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어요.
그 나무가 바로 사이프러스나무였어요. 겨울에도 짙은 빛을 잃지 않고, 곧은 모습으로 오래 서 있는 나무예요.
아폴론은 나무줄기에 손을 얹었어요. 신도 친구를 잃은 슬픔과 키파리소스를 잃은 슬픔을 함께 느꼈어요. 그는 조용히 말했어요.
“네가 다른 이를 위해 슬퍼했듯, 사람들도 슬픈 날에 너를 바라보게 될 거야. 나도 너를 잊지 않겠다.”
바람이 지나가자 사이프러스의 가느다란 잎이 낮게 흔들렸어요. 그것은 크게 울부짖는 소리도, 슬픔을 빨리 잊으라는 재촉도 아니었어요. 말없이 곁을 지키는 작은 대답 같았어요.
그 뒤로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곳 가까이에 사이프러스나무를 심었어요. 나무는 슬픔을 없애 주지 않았어요. 다만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거센 날에도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어요.
케오스섬의 숲에도 해마다 여름이 돌아왔어요.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 사이프러스나무는 길고 조용한 그림자를 만들었어요. 그 그늘에는 키파리소스가 아꼈던 사슴과, 너무 늦게 배운 조심스러움이 함께 기억되고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