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저주 대신 멈춰 선 랍비

옛날, 랍비 요슈아 벤 레위의 이웃에 그를 몹시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성경의 뜻을 두고 말을 나눌 때마다 마음을 상하게 했지요. 랍비는 대화가 끝난 뒤에도 그 말을 쉽게 잊지 못했어요.

분노가 쌓이자 상대에게 벌이 내리기를 바라게 되었어요. 마침내 하나님의 분노가 드러난다고 여긴 짧은 때를 기다렸다가 이웃을 저주하려 했어요.

그는 그때를 알아보려고 수탉을 지켜보았다고 이야기는 전해요. 마음은 온통 이웃을 향한 분노에 가 있었어요.

풀밭의 수탉과 암탉, 병아리를 그린 알베르투스 페르후선의 1855년 회화
수탉과 암탉·병아리, 1855년 · 출처: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졸음이 찾아왔어요. 랍비는 깜빡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때는 기다리던 때가 지나가 있었어요. 준비한 일을 하지 못한 거예요.

다음번에는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랍비는 다시 기다릴 준비를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기가 하려던 일이 옳은지 돌아보았어요.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구나.”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지으신 모든 것에 미친다는 가르침을 떠올렸어요. 스스로 옳은 길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지금은 누군가에게 벌이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웃이 한 말 때문에 화가 난 까닭은 남아 있었어요. 그 사람이 괴롭힌 일이 옳아진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나 화가 날 이유가 있다는 것과 남에게 해를 바라는 방법이 옳다는 것은 달랐어요.

랍비는 저주하려던 마음을 거두었어요. 자신이 놓친 것은 기다리던 한순간이었지만, 그 뒤의 행동까지 똑같이 되풀이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는 상대의 잘못만 바라보던 자리에서 자기 방법도 살피게 되었어요. 지나간 순간을 붙잡으려고 다시 기다리는 대신, 하려던 일을 멈추는 쪽을 택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화가 날 만한 이유가 있어도 상대에게 해를 바라는 행동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니에요. 랍비는 처음 마음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을 바꾸었어요. 괴롭힘을 겪을 때는 혼자 참기보다 도움을 구하면서, 보복하고 싶은 마음과 나를 안전하게 지킬 행동을 구분할 수 있어요.

함께 읽기: 축복을 부탁받은 랍비 이스마엘 · 손을 내민 세 번의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