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모세의 세 번째 부탁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아주 오래전의 일이에요. 모세에게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할 길이 있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일은 어디로 갈지만 정한다고 끝나지 않았지요.

그는 하나님께 백성 가운데 함께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어요. 또 다른 신을 섬기는 민족 가운데에는 같은 방식으로 함께하지 말아 달라고 청했어요. 이스라엘과 맺은 특별한 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란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부탁을 꺼냈어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그 길을 알고 싶습니다.”

시나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산맥과 오른쪽의 현대 예배당이 담긴 2007년 파노라마 사진
시나이산 정상의 2007년 풍경 · 사진: Florian Prischl/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모세가 궁금했던 것은 사람들의 삶이 서로 다른 까닭이었어요. 바르게 사는 사람 가운데에도 편안한 이와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었어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잘살거나 힘들게 살았지요.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형편이 언제나 나란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어요.

그 물음에 모세는 답을 들었을까요? 훗날 학자들은 서로 다른 가르침을 전했어요.

랍비 요하난은 요세의 이름으로, 세 부탁이 모두 받아들여졌다고 했어요. 이 가르침에 따르면 모세는 세 번째 물음에도 설명을 들은 셈이었지요.

학자들은 어떤 설명이 가능한지 따져 보았어요. 먼저 부모의 삶이 자녀의 형편과 이어진다는 설명이 나왔어요. 그러나 곧 질문이 붙었어요. 부모의 잘못을 그대로 따르지 않은 자녀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부모가 누구인지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어요.

이어 사람 자신이 얼마나 온전히 의롭거나 악한지에 관한 풀이가 나왔어요. 겉으로는 한쪽 모습만 보이더라도 한 사람 안에는 선함과 부족함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지요.

그런데 랍비 메이르가 전한 생각은 달랐어요. 앞의 두 부탁은 받아들여졌지만, 세 번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보았어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자비를 사람이 모두 계산해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 두 설명은 같은 답이 아니에요. 한쪽은 모세가 답을 들었다고 전하고, 다른 쪽은 그 길을 모두 알도록 허락된 것은 아니라고 전해요. 학자들은 그 차이를 남긴 채 물음을 살폈어요.

모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을 손쉽게 나누어 판단하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바르게 살면서도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의 삶이 왜 그런지였지요.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남의 형편만 보고 모든 사정을 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져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어려운 질문에는 서로 다른 설명이 남기도 해요. 모세의 세 번째 부탁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답은 같지 않았어요. 누군가 힘들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나 가족이 잘못했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아야 해요. 까닭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그 어려움을 듣고 도울 방법은 찾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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