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랍비 제라는 하루의 기도를 정성껏 드리려 애썼어요. 그가 배운 가르침 가운데에는 구원을 기억하는 축복과 기도를 바로 이어 가는 일이 있었어요. 그렇게 한 사람은 그날 불행한 일을 만나지 않는다는 말도 전해졌지요.
제라도 그 순서를 지켜 기도한 날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뜻밖의 일을 맡게 되었어요. 향기 나는 도금양 가지를 왕궁으로 나르는 일이었어요. 스스로 가겠다고 나선 심부름이 아니라, 원치 않았는데도 해야 했던 일이었지요.
제라는 가지를 옮기며 마음이 불편했어요. 정성을 다해 기도했는데도 이런 수고를 겪어야 하다니, 자기가 들은 가르침과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그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제라가 자신의 경험을 꺼냈어요.
“저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불운한 일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이었는지 물었어요. 왕궁에 도금양 가지를 나른 일이란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제라가 생각하지 못한 면을 짚었어요.
“왕을 보려고 값을 치르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대는 그 일로 왕궁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으니, 불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제라가 떠올린 것은 원치 않는 심부름이었어요. 대답한 사람들이 떠올린 것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왕을 볼 기회였지요. 같은 하루를 놓고 서로 다른 부분을 보고 있었어요.
왜 왕을 보는 일이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이 문답 뒤에는 랍비 요하난의 가르침도 이어져요. 이스라엘의 왕뿐 아니라 다른 민족의 왕도 볼 기회가 있으면 가 보라는 말이었어요.
요하난은 훗날 이스라엘의 왕들이 회복되는 때를 생각했어요. 다른 왕들의 모습을 보아 두면 그때의 모습과 비교해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여겼지요. 왕궁 구경 자체보다, 지금의 경험이 훗날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종교적 기대가 담긴 말이었어요.
이런 가르침을 함께 놓으면 사람들이 제라에게 한 대답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들은 왕을 볼 기회가 있었다는 점을 좋게 본 것이었어요.
그렇다고 제라가 억지로 일을 해야 했다는 사실까지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날에는 힘들게 나른 가지도 있었고, 그 때문에 들어간 왕궁도 있었어요. 하나를 말한다고 다른 하나를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요.
제라는 자신의 경험을 가르침에 억지로 맞추어 감추지 않았어요. 불편했던 일을 그대로 말했고, 사람들은 그 일에서 다른 면을 찾아 답했어요. 그 문답에는 한 가지 사건을 더 넓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남았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어떤 일을 겪었는지와 그 일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솔직히 말할 수 있어요. 제라는 불편했던 경험을 숨기지 않고 물었어요. 다른 면을 발견하면 생각을 넓힐 수 있지만, 힘들었다는 마음을 지우거나 강제로 시킨 일을 정당화해서는 안 돼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들을 때는 좋은 점부터 찾으라고 재촉하기보다 그 사정부터 들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