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이스라엘 땅에 랍비 요하난이라는 학자가 있었어요. 그는 사람들이 전해 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자신이 배우던 가르침과 이어 생각하곤 했어요.
어느 날 먼 바빌론에서 온 소식이 전해졌어요. 그곳에도 오래 사는 노인들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바빌론은 요하난이 살던 이스라엘 땅 바깥에 있었지요.

“바빌론에도 오래 사는 노인들이 있다고요?”
요하난이 놀란 데에는 까닭이 있었어요. 그는 백성이 약속받은 땅에서 오래 살아가리라는 가르침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땅 밖에 사는 노인들의 소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했지요.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노인들의 생활을 더 알려 주었어요.
“그분들은 회당에 일찍 가고, 늦게까지 머뭅니다.”
회당은 함께 기도하고 배우는 곳이에요. 요하난은 노인들이 그곳을 찾아가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어요. 잠깐 들렀다 바삐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 가운데 함께 기도할 시간을 소중히 마련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바로 그것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군요.”
요하난은 그 정성을 오래 사는 복과 이어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어느 땅에 사는지를 보았지만, 생활을 듣고 나자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지도 생각하게 된 거예요.
이 일화 뒤에는 비슷한 가르침도 전해져요. 랍비 요슈아 벤 레위가 자기 자녀들에게 회당에 일찍 가고 늦게 나오라고 권한 말이에요. 함께 배우는 자리를 꾸준히 찾는 생활을 귀하게 여긴 것이었지요.
날마다 문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복되다고 한 옛 지혜의 말도 같은 뜻으로 풀이되었어요. 이미 다 배웠다고 돌아서지 않고, 다시 들을 자리를 찾는 태도였어요.
요하난에게 바빌론은 여전히 먼 곳이었어요. 그러나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는 처음보다 가까워졌어요. 처음 듣고 놀란 소식을 틀렸다고 밀어내는 대신, 그들의 생활을 더 들으며 자신의 물음을 풀어 간 것이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내가 알던 생각과 다른 소식을 들으면 한 가지를 더 알아볼 수 있어요. 요하난은 노인들의 생활을 듣고 처음의 물음을 다시 생각했어요. 다만 이 일화는 옛 학자가 종교적 복을 설명한 이야기이지, 회당에 가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의학적 근거는 아니에요. 몸이나 사정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탓해서도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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