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유대인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던 랍반 가말리엘에게 아들들이 있었어요. 아들들도 아버지에게 배우며 날마다 지켜야 할 일을 익혔지요. 그중 하나가 저녁에 셰마를 읽는 일이었어요. 셰마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읽는 중요한 기도문이에요.
어느 날 아들들은 혼인 잔치에 갔어요. 잔치에서 돌아오니 밤이 깊었어요. 그제야 아직 저녁 셰마를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지요.
“아버지, 저희가 셰마를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가말리엘이 대답했어요.
“새벽이 오지 않았다면 아직 읽어야 한다.”

아들들은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새벽까지라고 가르쳤지만, 다른 현자들은 자정까지라고 했거든요. 이미 자정이 지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에게 편한 가르침만 골라 따를 수도 없었어요.
“다른 현자들은 자정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생각이 다른 것 아닌가요?”
가말리엘은 두 시각이 왜 나오는지 설명했어요. 셰마를 읽을 수 있는 마지막 때는 새벽이에요. 다른 현자들도 그 점을 인정하지만, 사람들이 일을 미루다가 놓치지 않도록 자정이라는 경계를 앞에 두었다는 것이었어요.
“아직 시간이 많다고 미루다 보면, 해야 할 일을 잊은 채 새벽을 맞을 수 있지. 그래서 더 일찍 마치도록 가르친 것이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정과 새벽을 구별할 수 있었어요. 자정은 미루지 않도록 앞서 세운 마감이었어요. 새벽은 밤이 끝나기 전, 정말로 남아 있는 마지막 경계였지요.
그렇다면 지금 늦었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었어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어요. 그렇다고 다음에도 일부러 마지막 때까지 기다리라는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요.
“지금이라도 읽어야겠군요.”
가말리엘의 답은 처음과 같았어요. 아직 새벽이 오지 않았다면 읽어야 했어요. 아들들을 멈추게 했던 물음이 풀렸어요. 이제는 늦었다는 걱정을 되풀이할 때가 아니라, 남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마칠 때였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늦었다고 느낄 때는 포기하기 전에 실제로 남은 시간과 해야 할 일을 확인해 보세요. 아들들에게는 아직 마쳐야 할 일이 남아 있었어요. 다만 마지막 기회가 있다는 말은 다음에도 미루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일찍 정한 마감은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