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유대인 학자들은 회당에 모여 함께 기도했어요. 회당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배우는 곳이에요. 그런데 랍비 나흐만은 몸이 허락하지 않아 그 자리에 나가기 어려웠어요.
어느 날 랍비 이삭이 나흐만에게 물었어요.
“왜 회당에 와서 함께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나흐만이 사정을 말하자 이삭은 다른 길을 생각했어요. 밖으로 나올 수 없다면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가는 방법은 어떨까요?
“열 사람을 댁에 모아 함께 기도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나흐만은 그것도 부담스럽다고 했어요. 자신을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 역시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던 거예요.

이삭은 같은 부탁을 되풀이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보다 기도하는 시간을 생각했어요.
“회당에서 기도를 이끄는 이에게 시간을 알려 달라고 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할 때 댁에서도 기도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나흐만이 밖에 나가거나 사람들을 집으로 부르지 않아도 되었어요. 서로 떨어져 있어도 같은 때에 기도할 길은 있었지요.
나흐만은 이삭이 여러 방법을 찾아 주는 까닭을 물었어요. 이삭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특별히 소중하게 여긴 가르침을 설명했어요.
시편에는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때에 기도하고 싶다는 말이 있어요. 시편은 기도와 찬양 등을 담은 시들의 모음이에요. 학자들은 그때를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풀이했지요.
이삭은 나흐만이 혼자 있어도 그 함께함에서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회당으로 나오라는 첫 방법이 어렵자 집에서 모이는 방법을, 그것도 어렵자 시간을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 주었어요.
대화가 시작될 때 나흐만은 회당에 갈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야기가 끝나도 그의 몸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요. 달라진 것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길을 보는 눈이었어요. 장소를 같이하지 못해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이야기가 남긴 교훈
상대가 어렵다고 말할 때 같은 방법을 더 세게 권하기보다 무엇이 어려운지 들어볼 수 있어요. 이삭은 나흐만의 대답에 맞추어 제안을 바꾸었어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지키면서도 상대가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배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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